> 방송 로그 녹취록 기록 시각: [10203]> 감청 대상 우주 함선의 등록자: [데이터 손상됨]> 일련 등록 번호: [파일을 찾을 수 없음]> 문자화 기록 시작:노라: "마지막 한 번만 더 달려 봅시다, 꿈꾸는 여러분. 열기가 더해가면, 다들 시원한 그늘을 찾게 되기 마련인 거에요. 이젠 슬슬 숨어들 시간이니까요.
그렇지 않나요, 발신자분?"
발신자: "솔직히 말하자면, 잘은 모르겠습니다만... 도대체... 어쩌다 이런 난장판이 되고 만 겁니까?"
노라: "괜찮아요. 여긴 다들 친구니까. 부를 이름은 있고요?"
발신자: "오, 이름. 물론, 있지요. 별칭이지만. "뼈다귀"라고 부르시면 될 겁니다. 그만하면 충분한 이름이 되겠지요."
부디 이해해 주시길. 지금 이 상황에선 익명성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니 말입니다. 물론 신뢰 또한 마찬가지겠지요."
노라: "늘 그렇죠. 여긴 모두의 성소이자 피난처니까. 뼈다귀 씨, 그러니까 들어봅시다. 지금 그 마음속엔 뭐가 있나요?"
발신자: "'제 마음속에' 뭐가 있는가 - 더 정확히는, 제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. 그것 자체가 바로 문제인 겁니다."
무엇인가가 일어났단 말입니다. 저... 그러니까 저와 같은 자들에게 설계되지도, 의도되지도 않은 무언가가 말입니다. 어떤 계시인지, 아니면 환각일 뿐인지! 알 수가 없을 따름입니다. 어떻게든 어디에 닿아야만 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히지만... 대체 누구에게 닿으란 말입니까? 그래서 이렇게 연락을 취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. 그로 인해 지금 저는, 그 심각한 불안이란 것에 빠져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.
그리고 당신께 지금까지 연락해 온 발신자들, 그들의 곤경 이야기... 어쨰서인지 모두 지나치게 익숙하게 느껴지더군요."
노라: "때로 우리의 마음은 아픈 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만들어 우리를 보호하곤 하지요. 또 어떤 때엔 도움이 될 만한 쪽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답니다. 가끔 우리 자신이 그걸 잘 깨달을 수 없더라도 말이에요.
사실 따로 연락하려 했던 누군가가 있나요, 뼈다귀 씨?"
발신자: "부디, 용서하시길. 저는 너무나도 두렵습니다. 아주 극심하게요. 그리고 제 곁엔 아무도 없습니다. 지금처럼, 이 드넓은 우주에 이렇게까지 외따로 떨어져 있단 느낌을 받은 건 정말로 오랜만이지요."
원래는 이런 공포를 나눌 만한 누군가가 곁에 있었습니다. 헌데, 너무 갑작스럽게,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, 그 누군가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요. 설마 저를 내버린 것은 아닐테지요? 예? 설마 그렇게 갑자기? 그렇게 냉정하게?
그 사람이 너무나도 그립습니다. 사무칠 만큼.
노라: "다 이해해요. 노라도 고독이라면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니까. 상실이란, 좋든 싫든 우리의 종교나 다름없는 존재죠."
그래서... 다른 이야기들이 익숙하게 들렸다고요.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말인데, 그, 모 인페스티드 위성 근처에 있나요?"
발신자: "어, 아, 데이모스 말입니까? 아, 아니요. 하 하 하. 대체 누가 그런 곳에 근처라도 가고 싶어 하겠습니까? 제가요? 하.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. 크흠.
나이트 양, 괜찮다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, 누구든 그렇게나 수없이 많은 세월을 지내오다 보면, 그러니까... 감각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 마련이란 겁니다. 현실, 그대로에 대한 감각을.”
노라: "그렇게 느낀다면, 당신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 거예요, 뼈다귀 씨. 이 성계의 뭔가가 저물고 있거든요. 뭔가 큰 거요. 자, 생각해 봅시다. 여기서 우린 모두가 가족이고, 가족은 당신이 평안하길 바라는 법이니까요. 도움을 청할 만한 다른 사람이 혹시 있나요?"
발신자: "도움이라... 너무 오랫동안 세상의 쓴맛만을 보아온 나머지, 그런 걸 청하는 방법도 거의 잊어버리고 말았지요. 그 대신,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숨어버리곤 했습니다."
노라: "이봐요 뼈다귀 씨, 뼈다귀 씨? 여기선 서로가 서로를 잘 돌봐줘야 한다구요. 이건 절대원칙이에요."
발신자: "휴... 차라리 다른 누군가를 도와드리는 임무를 맡을 때가 훨씬 쉬운 것 같군요. 하지만 이 위협은 제게 좀... 개인적인 것이라 말입니다."
노라: "이어지는 것. 알려지는 것. 신뢰하는 것. 전혀 무서워할 게 아니에요. 우리 모두의 방식인걸요."
발신자: "그렇군요. ‘우리 모두의 방식’이라. 과연 그렇지요. 저는 저 자신을 위해 도움을 청할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."
단 한 번... 오. 오오, 이런 바보 같을 데가."
노라: "뼈다귀 씨?"
발신자: "나이트 양, 저는 본능을 따르는 생명체는 아닙니다만,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본능을 따라온 것 같군요. 연습조차도 거의 없었는데 말입니다.
'알려지는 것'. 그렇지요. 분명, 제가 닿으려 했던 상대는 당신이 아닐 겁니다. 하지만... 조금 전 마음에 대해 뭐라고 하셨었지요?"
노라: “뭔가 심오한 거였겠죠, 분명."
발신자: "'마음은 우리가 도움이 될 만한 쪽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, 가끔 우리 자신이 그걸 잘 깨달을 수 없더라도.' 그렇지요. 그렇고말고요. 제 마음은 제 것이 아닌 겁니다.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 낸, 의식의 그릇이니까요. 그리고 그 누군가는, 확신하건대, 본인이 의도한 바를 정확히 알았던 겁니다."
어떤 사람이 있습니다. 우리 둘 모두가 아는 사람이요, 나이트 양. 몇몇 훌륭한 점 말고도 당신과 여러 공통점이 있는 그런 사람이 말입니다.
알 수 없는 존재를 다루는 데 능숙하기까지 한 그런 사람.
예, 그 사람을 불러야만, 지금 당장 불러야만 하겠습니다. 감사드립니다, 나이트 양.
노라: "천만에요, 뼈다귀 씨. 종종 연락하고요. 그리고 행운을 빌어요. 우리 모두."
[통신 종료]